케네스 골드스미스는 『문예 비창작: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 다루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언어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표현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실제로 나는 언어로 작업하면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물러나고 재료가 제 일을 하게 한다면 결국에는 그 결과에 매우 놀라고 기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작가가 직접 독창적인 텍스트를 작성해야만 한다는 원본성의 신화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비창조적 글쓰기”를 쌓고자 하는 시도로 읽힙니다. 비창조적 글쓰기는 다시 말해 “기계적 전유”이기도 합니다. 기계적,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미리 정해진 규칙과 지시문으로 작동하는. 전유, 기존에 있던 무언가를 다른 맥락에 두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 남의 글을 가져와 자신의 작업이라고 선언하는 일은 여전히 표절이나 도둑질이라는 오명이 붙기 마련입니다. 이에 대해 AG 랩 디렉터 민구홍이 지난 해 『도둑질은 좋다』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요컨대 우리는 모두에게 빚지고 있다. 당신이 무심코 쓰는 어떤 단어는 이미 오래전 죽은 소설가의 무덤에서 흘러나온 것이고, 당신이 ‘내 스타일’이라 우기는 어떤 문장은 사실 고전을 어설프게 흉내 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어떤 리듬은 당신도 끔찍하게 싫어했던 선생의 말투를 닮았고, 어떤 문단의 쓸쓸함은 까맣게 잊은 줄 알았던 옛 애인의 편지에서 슬쩍 가져온 것일지 모른다. 이런 지저분한 흔적을 우리는 고상하게 기억, 영향, 감수성 등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솔직해질 수 있다면, 이는 모두 본질적으로 도둑질임을 알 수 있다. 창작이란 결국 타인의 언어라는 옷을 빌려 입고 자기 얼굴인 척하는 행위이다.

케네스 골드스미스와 민구홍의 정신을 성실히 도둑질한 결과, 저는 전유 기계를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름은 「YAGT」, ‘Yet Another Google Translate’의 준말입니다.

사용법은 간단합니다. 왼쪽에 전유하고 싶은 텍스트를 입력한 뒤, 그저 구글 번역을 하듯 ‘translate’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나 이는 다른 언어로 옮겨 적기 위함이 아니라, 임의로 선택된 몇 개의 언어를 거쳐 다시 원문의 언어로 돌아오기 위함입니다. 즉, 번역(translate)이 아니라 평행 이동(translate)에 더 가까운 셈이죠. 이렇게 돌아온 문장은 원문의 흔적을 은밀히 암시하는 새로운 문장으로서 창작의 재료가 됩니다.

가령 이상이 쓴 『날개』의 첫 문장,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는 핀란드어, 폴란드어, 영어를 거쳐 “천재에서 만족스러운 사람으로 변모한 사람을 아시나요?”가 됩니다. 이 문장은 다시 같은 과정을 거쳐 “천재에서 행복한 사람으로 변모한 사람을 아시나요?”가 되고요. 같은 과정을 반복했을 때 나오는 결과값이 이전과 같다면, 전유 기계는 이를 수렴된 최종 결과로 제시합니다. ‘noise’의 숫자를 선택하여 경유할 언어의 개수를 고를 수도 있고, ‘hold noise’를 활성화하여 이전 언어들의 경로를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YAGT」가 생성한 문장은 기계적으로 전유된 텍스트지만, 「YAGT」가 그 자체로 전유의 몸짓이기도 합니다. 웹 문화에는 ‘Yahoo(Yet Another Hierarchical Officious Oracle)’, ‘YAML(Yet Another Markup Language)’ 등 기존의 대상을 미묘하게 변주했다는 뜻을 담아 이름을 붙이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 전유 기계 역시 구글에서 제공하는 Cloud Tranlsation API를 활용해, 기존 구글 번역의 쓰임새를 다른 맥락에 가져다 놓는 것이죠. 요컨대 ‘전유 기계’로서 「YAGT」는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텍스트를 전유해 새로운 텍스트를 생성하는 기계, 그리고 기계적 방식을 전유해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


한편 「YAGT」는 수건과 화환의 마지막 전시 헤버싯 텍스트 페어에서도 공개되었습니다. 인터랙티브 콜렉티브 영원과 함께 참여한 이 전시에서, 저는 앞서 소개드린 구홍의 『도둑질은 좋다』 일부를 「YAGT」로 도둑질하기로 결심했죠. 그저 한 문장씩 정성스럽게 옮겨 적은 뒤 ‘translate’ 버튼을 누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생성된 새로운 『도둑질은 좋다』는 트레싱지에 인쇄되어 원문 위에 슬며시 포개지는 것이죠.

여기에 제 의지로 쓴 문장은 없지만, 이것은 엄연히 제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텍스트의 미래입니다.